18.오타성 (히타치국) |
오타성(일본어: 太田城)은 이바라키현 히타치오타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무로마치 시대 히타치 국 슈고 사타케 가문의 거성이었다. 간토 7대 명성 중 한곳이며, 사타케 성(佐竹城), 마쓰즈루 성(舞鶴城), 세이류 성(青龍城)으로도 불리고 있다. 성의 축성 연대는 명확지 않지만, 1109년 후지와라 히데사토의 4대손 후지와라 미치노베가 시모우사 국에서 히타치 국 오타 향에 지토로 부임하여 이름을 오타 다이부(太田大夫)로 칭했으며, 오타 성을 축성했다고 한다. 후삼 년의 난(1051년 ~ 1062년)에서 히타치 국 구지군 사타케 향을 중심으로 한 미나모토 마사요시는 성을 사타케로 개칭해 세력을 확장했고, 아들 사타케 타카요시 대에 오면 오타 성주 후지와라 미치모리를 복속시켜 오타 성에 입성한다. 이때 두루미가 춤추며 날아 갔다하여 오타 성은 마이즈루 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헤이지의 난에서 타카요시는 다이라 기요모리 측에 가담해 세를 과시한다. 1180년는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거병하자 다이라 가문에 협력했던 사타케 가문은 요리토모를 적대했고, 전세는 불리해져 갔다. 이에 사타케 가문은 오타 성이 수성에 불리하다는 판단하에 가나사 산성으로 거처를 옮긴다. 곧이어 벌어진 긴사 성 전투에서 요리토모 군에 패배해 사타케 가문은 오슈로 도주한다. 그 후, 죄가 사면되었고, 요리토모 군에 속해 오슈의 후지와라 가문을 토벌했다. 이 공으로 고케닌의 지위를 얻게된다. 8대 사타케 사다요시 대에 오면 사타케 가문은 막부군의 일원으로 여러 전장에서 공을 세우지만,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도막군으로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의 붕괴에 일조했다. 하지만 고다이고 천황의 친정후, 북조측에 가담했기 때문에 히타치 슈고 오다 가문(小田氏)의 공세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다시금 오타 성을 버리고 가나사 산성, 다큐 성을 전전한다. 이 후, 북조가 남조를 압도하자, 사타케 가문은 히타치 슈고직에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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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미토성 |
미토성(일본어: 水戸城)은 이바라키현 미토시 산노마루에 있었던 연곽식 평산성이다. 도쿠가와 고산케 중 하나인 미토 도쿠가와가의 거성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에는 미토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성의 산노마루에 있는 번교 고도칸(弘道館)은 국가 지정 특별사적이며, 미토 성터는 이바라키현 지정 사적에 등재되어 있다. 미토시 중심부에 있는 미토 역 북쪽에 있는 구릉지에 축성된 성으로 북부의 나카가와 강과 남부의 센바 호를 천연의 해자로 삼았으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일렬로 배치한 연곽식 평산성이다. 특히 성은 석성이 아닌 토성이며 해자 또한 물이 고여 있지 않은 가라보리로 되어 있다. 같은 고산케 가문의 성인 나고야 성, 와카야마성에 비해 성으로서의 기능은 떨어져 보인다. 이는 방위상 중요성이 낮은 간토에 입지한 탓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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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오타성 (히타치국) |
오타성(일본어: 太田城)은 이바라키현 히타치오타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무로마치 시대 히타치 국 슈고 사타케 가문의 거성이었다. 간토 7대 명성 중 한곳이며, 사타케 성(佐竹城), 마쓰즈루 성(舞鶴城), 세이류 성(青龍城)으로도 불리고 있다. 성의 축성 연대는 명확지 않지만, 1109년 후지와라 히데사토의 4대손 후지와라 미치노베가 시모우사 국에서 히타치 국 오타 향에 지토로 부임하여 이름을 오타 다이부(太田大夫)로 칭했으며, 오타 성을 축성했다고 한다. 후삼 년의 난(1051년 ~ 1062년)에서 히타치 국 구지군 사타케 향을 중심으로 한 미나모토 마사요시는 성을 사타케로 개칭해 세력을 확장했고, 아들 사타케 타카요시 대에 오면 오타 성주 후지와라 미치모리를 복속시켜 오타 성에 입성한다. 이때 두루미가 춤추며 날아 갔다하여 오타 성은 마이즈루 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헤이지의 난에서 타카요시는 다이라 기요모리 측에 가담해 세를 과시한다. 1180년는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거병하자 다이라 가문에 협력했던 사타케 가문은 요리토모를 적대했고, 전세는 불리해져 갔다. 이에 사타케 가문은 오타 성이 수성에 불리하다는 판단하에 가나사 산성으로 거처를 옮긴다. 곧이어 벌어진 긴사 성 전투에서 요리토모 군에 패배해 사타케 가문은 오슈로 도주한다. 그 후, 죄가 사면되었고, 요리토모 군에 속해 오슈의 후지와라 가문을 토벌했다. 이 공으로 고케닌의 지위를 얻게된다. 8대 사타케 사다요시 대에 오면 사타케 가문은 막부군의 일원으로 여러 전장에서 공을 세우지만,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도막군으로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의 붕괴에 일조했다. 하지만 고다이고 천황의 친정후, 북조측에 가담했기 때문에 히타치 슈고 오다 가문(小田氏)의 공세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다시금 오타 성을 버리고 가나사 산성, 다큐 성을 전전한다. 이 후, 북조가 남조를 압도하자, 사타케 가문은 히타치 슈고직에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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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미토성 |
미토성(일본어: 水戸城)은 이바라키현 미토시 산노마루에 있었던 연곽식 평산성이다. 도쿠가와 고산케 중 하나인 미토 도쿠가와가의 거성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에는 미토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성의 산노마루에 있는 번교 고도칸(弘道館)은 국가 지정 특별사적이며, 미토 성터는 이바라키현 지정 사적에 등재되어 있다. 미토시 중심부에 있는 미토 역 북쪽에 있는 구릉지에 축성된 성으로 북부의 나카가와 강과 남부의 센바 호를 천연의 해자로 삼았으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일렬로 배치한 연곽식 평산성이다. 특히 성은 석성이 아닌 토성이며 해자 또한 물이 고여 있지 않은 가라보리로 되어 있다. 같은 고산케 가문의 성인 나고야 성, 와카야마성에 비해 성으로서의 기능은 떨어져 보인다. 이는 방위상 중요성이 낮은 간토에 입지한 탓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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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에도성 |
에도성(일본어: 江戸城)은 도쿄도 지요다구 지요다에 있는 윤곽식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은 지요다성(千代田城)이다. 에도 막부 쇼군의 거처이며, 최고 정무기관이었다. 메이지 유신때 황실의 교토 어소가 에도성으로 이전해서 지금까지 황실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이 후, 후키아게 교엔(후키아게 정원)과 에도성의 니시노마루에는 어소 및 궁전이 위치해 있다. 통상 황실의 거처로 있는 니시노마루와 후키아게 정원에는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그 동쪽에 있는 옛 에도 성의 중심부인 혼마루와 니노마루, 산노마루는 고쿄 히가시 교엔(궁전의 동쪽 정원)으로 개방되어있다. 남쪽에 있는 고쿄 가이엔(궁전의 바깥 정원)와 북쪽에 기타노마루 공원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은 일반부지로 되어 있다. 소가마에[1] 전체 면적은 세계최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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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고쿄 히가시 교엔 |
고쿄 히가시 정원(일본어: 皇居東御苑)은 고쿄(皇居: 황거)의 동측에 있는 정원이다. 궁내청 관할이며, 황궁 경찰이 배속되어 있다. 일찌이 에도 성의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에 위치해 있고, 약간의 니시노마루 부분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일본식 정원과 황실관련 시설, 그리고, 에도 성의 건물등이 남아 있다. 전후,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68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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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가스가산성 |
가스가 산성(일본어: 春日山城)은 니가타현 조에쓰시에 있었던 연곽식 산성이다. 센고쿠 시대 우에스기 겐신(나가오 가게토라)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고, 성터는 국가 사적에 지정되어 있다. 난보쿠초 시대 에치고국 슈고 우에스기 가문의 거관을 방비하기 위해 쌓은 성채가 그 시초이다. 1507년 슈고다이 나가오 다메카게가 우에스기 사다자네를 옹립해 슈고 우에스기 후사요시를 추방한 후, 나가오 가문은 가스가 산성을 성주로 대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도요토미 정권기에 우에스기 가게카쓰(나가오 가게카쓰)는 아이즈 지방으로 이봉되었고, 호리 가문이 에치고로 부임해 온다. 산성인 탓에 호리 가문은 1607년 나오에쓰 항 인근에 후쿠시마 성을 쌓고 거처로 삼았다. 이리하여 가스가 산성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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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시바타성 |
시바타성(일본어: 新発田城)은 니가타현 시바타시에 있는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시바타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으며, 아야메 성(菖蒲城), 후나가타 성(舟形城)이라는 이명이 있다. 인접한 시바타 강을 끌어들어 해자로 삼은 평성이다. 혼마루 주위를 니노마루가 감싸 안은 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며, 니노마루 남쪽에 돌출된 형태로 산노마루가 자리잡고 있다. 혼마루의 형태가 배와 닮아 있다 하여 후나가타 성(舟形城: 주형성)이라는 이명이 있다. 또, 주변에는 창포가 많이 피어 아야메 성(菖蒲城: 창포성)으로도 불린다. 석벽은 모난 돌을 다듬어 쌓아 올렸고, 망루의 벽은 가나자와 성에서도 볼 수 있는 나마코카베로 불리는 격자형의 외벽으로 장식되어 있다. 혼마루의 3층 망루는 실질적인 천수지만, 막부를 고려해 오산가이 야구라(三階櫓) 즉 3층 망루로 불리고 있다. 3층 망루는 2004년 복원된 것으로 1679년 재건된 망루를 모델로 복원한 것이다. 메이지 초엽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쓰키 망루가 딸린 승탑형 3층3계의 망루였고, 1층의 서쪽면과 남쪽면에는 출창형으로 된 이시오토시가 설치되었다. 특히 망루의 용마루는 정자형(丁字型)의 형태로 지어져 3마리의 샤치호코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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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다카다성 |
다카다성(일본어: 高田城)은 니가타현 조에쓰시 모토시로 정에 있는 윤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 다카다번의 번청이 있었다. 이명으로는 사메가 성(鮫ヶ城: 상어성), 세키 성(関城) 등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6남 마쓰다이라 다다테루에 의해 지어져 주변 여러 다이묘의 조력으로 지어진 몇 안되는 성중 한 곳이다. 성의 설계와 감독은 다다테루의 장인 다테 마사무네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다 성은 다카다 평야에 있는 보다이가하라(菩提ヶ原)에 지어진 평성이다. 성의 중심에 혼마루를 두고, 그 주위를 니노마루가 싸고 있으며, 니노마루의 남쪽에 산노마루를, 북쪽에 기타노마루를 배치하였다. 주변 세키가와 강과 아오다 강 등을 해자로 삼았다. 그리고, 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석벽이 일체 없다. 저습지에 축성한 탓에 배수기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상징인 천수는 1614년 3층3계로 지어져 있으며, 오산가이 야루라 즉 3층망루로 불리고 있다. 당시에 조성된 3층망루의 외관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에도 성의 후시미 망루를 닮았다고 전해져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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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후쿠시마성 (니가타현) |
후쿠시마성(일본어: 福島城)은 니가타현 조에쓰시 미나토 정에 있는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다카다번의 번청이 있었다. 겨우 7년만 존속한 뒤 폐성되었다. 후쿠시마 성(福嶋城)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성은 현재 조에쓰 시립 후루시로 초등학교 부근에 지어졌다. 북으로는 동해 맞주하였고, 남으로는 해자(현재 호쿠라 강)를 두었으며, 서로는 세키카와 강이 동으로는 호쿠라 강이 흐르고 있는 평지에 지어졌다. 당시 이 지역의 영주였던 우에스기 가게카쓰가 아이즈 지방으로 전봉되자,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였던 호리 히데하루가 가스가 산성에 입성한다. 산성인 탓에 정무와 거처로서는 부적격하여 바다와 인접한 곳에 후쿠시마 성을 축성한다. 축성 연대는 명확치 않지만, 1600년 이후로 보고 있다. 성이 완성되자, 1607년 2대 번주 호리 다다토시가 가스가 산성을 버리고 후쿠시마 성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 때, 가스가 산성의 마을도 함께 옮겨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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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오노성 (후쿠이현) |
오노성(일본어: 大野城 오노조[*])은 후쿠이현 오노시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오노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가메야마 산성(亀山城)이란 이명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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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오바마성 (후쿠이현) |
오바마성(일본어: 小浜城)은 후쿠이현 오바마시에 있었던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오바마번의 번청이 있었고, 교고쿠씨가 잠깐 다스리다 전봉된 후, 후다이 다이묘 사카이씨 14대의 거성이었다. 사카이 가문은 막부의 요직에서 쇼군을 보좌했던 가문이다. 노치세 산성을 중심으로 와카사 슈고 다케다 가문이 오바마 지역을 다스린 후, 오다 노부나가가 긴키 전역을 제패하자, 그의 가신 니와 나가히데가 영주로 부임해 와 입성한 뒤, 아사노 나가마사, 기노시타 가쓰토시로 영주가 교체되었다.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한 기노시타 가쓰토시의 영지가 몰수되어, 대신 동군에 속해 공을 세운 교고쿠 다카쓰구가 와카사 1국을 영지로 받아 입성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1601년 오바마 성의 축성을 시작했다. 다카쓰구는 가신 안요지 사부로사에몬과 아카오 이즈노카미에게 설계를 명했고, 소토모의 돌을 모아 성을 쌓았다. 하지만, 교고쿠 가문은 에도 성 축성 때의 부역에 동원되었고, 좀처럼 공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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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가쓰야마성 (후쿠이현) |
가쓰야마성(일본어: 勝山城 가쓰야마조[*])은 후쿠이현 가쓰야마시에 있었던 제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에치젠 가쓰야마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천수각 건물이 있는 성이기도 하다. 단, 천수각은 후세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가쓰야마 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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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쓰루가성 (후쿠이현) |
쓰루가성(일본어: 敦賀城 쓰루가조[*])은 후쿠이현 쓰루가시에 있었던 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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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후쿠이성 |
후쿠이성(일본어: 福井城)은 후쿠이현 후쿠이시에 있는 윤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후쿠이번의 번청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필두 가신 시바타 가쓰이에의 거성(당시 기타노쇼 성北ノ庄城)으로 유명하다.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가 이 지역 다이묘 가문인 아사쿠라 가문을 멸문시킨 후, 아케치 미쓰히데가 기타노쇼 성에 입성하여 전후처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당시에 이 땅에 성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존재했다면, 전투에 대비해 조성되었을 성채로 추정하고 있다. 후쿠이 성은 1575년 시바타 가쓰이에가 축성한 기타노쇼 성과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남 유키 히데야스가 지은 기타노쇼 성으로 나뉜다. 후에 나중에 지어진 기타노쇼 성은 후쿠이 성으로 개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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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마루오카성 |
마루오카성(일본어: 丸岡城)은 후쿠이현 사카이시 마루오카 정 가스미에 있는 연곽식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가스미가 성(霞ヶ城)으로 한국어로 뜻을 풀이하면 '안개 성'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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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와도노 산성 |
이와도노 산성(일본어: 岩殿山城 이와도노야마조[*])은 야마나시현 오쓰키시 니기오카 정에 있는 높이 634m의 이와도노 산에 축조된 연곽식 산성이다. 센고쿠 시대에는 오야마다 가문의 거성이었으며, 견성으로 알려져 있다. 야마나시 현 지정 사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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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고후성 |
고후성(일본어: 甲府城)은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고후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가, 막부직할령에 편입되어 막부에서 관리하였다. 마이즈루 성(舞鶴城)이라는 이명이 있으며, 성터는 야마나시 현 사적에 지정되어 있다. 고후시 중심부의 이치조 산에 축성된 평산성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이 국을 영지로 삼을 때인 1583년 무렵에 지어졌다. 성이 축성되기 전에는 다케다 가문의 쓰쓰지가사키 관(躑躅ヶ崎館)을 중심으로 성하 마을이 번영하였지만, 다케다 가문이 멸문된 후에는 도쿠가와 가문과 도요토미 계 다이묘에 의해 고후 성을 중심으로 재정비되었다. 도요토미 정권기에는 간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한 주요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이 성주로 부임하였고, 에도 시대에는 교통의 요지인 탓에 신판, 후다이 다이묘의 성이었다가 막부직할령에 편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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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츠츠지가사키관 |
츠츠지가사키관(일본어: 躑躅ヶ崎館 (つつじがさきやかた) 츠츠지가사키야카타[*])은 전국시대에 카이국 야마나시군 고후추(오늘날의 야마나시현 고후시 고후추)에 있었던 성관이다. 카이국수호 타케다씨의 거성으로, 타케다씨가 전국다이묘가 된 이후 영지 경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카이 타케다씨의 본거지로, 영주의 거관과 가신단옥부, 성하도시가 일체화되어 있었다. 노부토라, 하루노부, 카츠요리 3대 60년에 걸쳐 부중(府中; 후추) 역할을 했다. 이후 성관 자체는 버려지고 허물어졌지만 츠츠지가사키관 주변에 형성된 도시는 에도시대에 축성된 고후성과 연결되어 광역권을 이루면서 근대 이후의 고후시의 원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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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고모로성 |
고모로성(일본어: 小諸城)은 나가노현 고모로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고모로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스이게쓰 성(酔月城), 하쿠쓰루 성(白鶴城), 아나 성(穴城)이라는 이명이 있다. 1487년 오이 미쓰타다(大井光忠)가 축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센고쿠 시대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동부의 주요 거점으로 보고 현재의 터에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성을 설계한 인물이 신겐의 군사로 알려진 야마모토 간스케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는 없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엽 센고쿠 히데히사가 성주로 있을 때 대폭 개수되어 근세성곽으로 탈바꿈하였다. 천수도 이 무렵에 세워져 금박으로 된 기와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불행히도 1626년 낙뢰로 소실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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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다카시마성 |
다카시마성(일본어: 高島城)은 나가노현 스와시 다카시마에 있는 연곽식 평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스와노우키시로(諏訪の浮城, '스와의 떠있는 성') 또는 시마자키 성(島崎城)이라고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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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다쓰오카성 |
다쓰오카성(일본어: 龍岡城 다쓰오카조[*])은 나가노현 사쿠시에 있는 성이다. 사실 성이라기 보다 진야나 요새에 가깝다. 다쓰오카 성의 양식은 유럽의 능보식[1] 축조양식을 따랐다. 일본의 별 모양 성곽 2곳중에 한 곳이다. 이 때문에 다쓰오카 고료카쿠(龍岡五稜郭), 기쿄 성(桔梗城: 도라지 성)이라고 불린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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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마쓰모토성 |
마쓰모토성(일본어: 松本城, まつもとじょう)은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시에 있는 제곽식 형식과 윤곽식 형식을 띤 평성이다. 천수는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가 지적 사적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가라스성(烏城)으로 불린다. 과거에는 후카시성(深志城)이라고 불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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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이와무라성 |
이와무라성(일본어: 岩村城)은 기후현 에나시 이와무라 정에 있었던 제곽식 산성이다. 에도 시대 이와무라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성주변에 안개가 다수 발생하기 때문에 기리가 성(霧ヶ城)이라고도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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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오가키성 |
오가키성(일본어: 大垣城 오가키조[*])은 일본 기후현 오가키시에 있는 성곽으로, 연곽·윤곽 복합식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이름으로 "비 성"(麋城)과 "교로쿠 성"(巨鹿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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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기후성 |
기후성(일본어: 岐阜城 기후죠[*])은 일본 기후현 기후시(옛 미노 국 이노구치)의 긴카산에 위치한 일본의 성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사이토 다쓰오키(斎藤龍興)로부터 빼앗은 이나바 산성의 옛 구역을 부수고 새롭게 지은 것이 바로 기후 성이다. 성터는 기후성터(일본어: 岐阜城跡 ぎふじょうあと[*])로써 긴카 산과, 그 육괴의 2,091,602.74평방미터가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범위는 오늘날의 일본 국유림의 범위와 부합된다. 《신장공기》(信長公記)에는 「오와리국(尾張国) 고마키 산(小真木山)에서 노슈(濃州) 이나바 산(稲葉山)으로 넘어간다. 이노구치(井口)라 부르는 것을 이번에 고쳐서, 기후라 이름이 붙여졌다」(尾張国小真木山より濃州稲葉山へ御越しなり。井口と申すを今度改めて、岐阜と名付けさせられ)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나바 산(이노구치 산)에서 이어지는 산맥을 사이류지 산(瑞龍寺山)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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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스노마타성 |
스노마타성(일본어: 墨俣城,すのまたじょう 스노마타조[*])은 기후현 오가키시 스노마타정에 있었던 센고쿠 시대의 성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하룻밤만에 축성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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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다카야마성 |
다카야마성(일본어: 高山城 다카야마조[*])은 기후현 다카야마시에 있었던 평산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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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잘못된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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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이이노야성 |
이이노야성(일본어: 井伊谷城)은 도토미국의 이이노야(현재의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기타구 이나사 정)에 있었던 일본의 성이다. 이이 성이라는 별칭이 있다. 헤이안 시대 말기, 이이 가 초대 당주 이이 도모야스에 의해 축성되었다고 전해진다[1]. 남쪽은 세 방향으로부터의 적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북쪽은 표준 고도가 높은 산이 이어져 있어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에 세워진 성이다.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산성이다. 센고쿠 시대이전에는 미타케 성이 이이 씨의 본성이었다. 난보쿠초 시대의 기록은, 미타케 성을 「이이 성」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성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남북조 시대는 이이노야 성이 평소, 이이 씨가 전쟁중이 아닐 때 생활하던 거성이고, 미타케성이 전쟁중에 농성을 하기 위한 방위 성의 최종 거점이었다고 한다(하지만, 센고쿠 시대의 이이 가의 최종 거점 성은 미타케 성의 뒤쪽 산으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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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고코쿠지성 |
고코쿠지성(일본어: 興国寺城, こうこくじじょう)은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에 있었던 연곽식 평산성이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호조 소운의 연고가 되었던 성으로 유명하다. 다른 이름으로는 네고야성(根古屋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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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슨푸성 |
슨푸성(일본어: 駿府城)은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아오이구에 있는 윤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슨푸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고, 막부직할령로 편입된 후에는 조다이(城代)를 파견하여 관리하였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다시금 슨푸 번을 두어 번청으로 사용되었고, 슨푸 번의 명칭은 슨푸 번(駿府藩), 후추 번(府中藩)으로 불리다가 시즈오카 번(静岡藩)으로 개칭되었다. 이런 연유로 슨푸 성은 후추 성(府中城)과 시즈오카 성(静岡城)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린다.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년에 머물렀던 성으로 유명하다. 14세기 스루가 국 슈고 이마가와 가문이 이 지역에 처소인 이마가와 관(今川館)을 조성한 것 그 시초이지만, 16세기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격을 받고 거관은 소실되었다. 1582년 다케다 가문의 세력이 쇠퇴하자 스루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소령이 되었고, 거관터에 성을 축성하였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간토의 호조 가문이 몰락하자,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명을 받아 옛 호조 가문의 영지인 간토로 이봉되었다.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나카무라 가즈우지가 성주로 부임해 입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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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하마마쓰성 |
하마마쓰성(일본어: 浜松城)은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나카구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하마마쓰번의 번청이 있었으며, 출세의 성으로 유명하다. 또,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성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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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안조성 |
안조성(일본어: 安祥城, あんじょうじょう)은 일본 미카와국 헤키카이 군(지금의 아이치현 안조시)에 있었던 성이었다. 설상대지의 선단에 세워져 있었으며, 주위는 논과 숲으로 에워싸여 있고 그 안쪽에 토루와 해자가 파여져 있었으며, 천수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 축성되어 오다씨, 이마가와씨, 마쓰다이라씨 간의 격렬한 전투가 이루어졌다. 숲에 둘러싸여 있었던 데에서 모리성(일본어: 森城 모리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비석, 무덤, 기리기시, 해자, 일부 성곽 등만이 남아있다. 혼마루 자리에는 다이조 사, 니노마루 자리에는 하치반 사, 산노마루 자리에는 다이조 사의 뒷마당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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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이누야마성 |
이누야마성(일본어: 犬山城)는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에 있는 소규모 성곽이다. 1935년 천수각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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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이와쿠라성 (아이치현) |
이와쿠라성(일본어: 岩倉城)은 아이치현 이와쿠라시 시모혼 정에 있었던 평성이다. 현재 성터는 이와쿠라 시 지정 사적에 등재되어 있다. 고문서에 따르면, 이와쿠라 성은 남북 약 170m, 동서 약 90m의 2중의 해자로 둘러쳐진 평성으로 망루와 저택이 있었다고 한다. 축성주에 관해서는 1479년 오다 도시히로가 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오다 노부야스가 하였다는 설도 있다. 오다 도시히로는 오와리 국 슈고 시바 요시토시의 가신으로 오와리 국 슈고다이의 직책으로 오와리 북부의 4개군을 다스렸다. 당시 오와리는 오다 도시히로의 이세노카미 가문(이와쿠라 오다 가문)과 오다 도시사다의 야마토노카미 가문(기요스 오다 가문)이 양분되어 패권을 다툰 후, 오와리 국 중 남부 오다 야마토노카미 가문이, 북부는 오다 이세노카미 가문이 둘로 나누어 다스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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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잘못된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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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가니에성 |
가니에성(일본어: 蟹江城 가니에조[*])은 아이치현 아마군 가니에정에 있었던 성이다. 가니에 전투로 널리 알려진 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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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가리야성 |
가리야성(일본어: 刈谷城 카리야조[*])은 일본 미카와국 헤키카이 군 가리야 (지금의 아이치현 가리야시)에 있었던 성이었다. 축성 당시의 한자 표기는 刈屋城이었으나, 1950년 가리야 정이 시로 승격한 이후에는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15세기의 가리야 고성과, 센고쿠 시대 중에 세워진 가리야 성 두 개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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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기요스성 |
기요스성(일본어: 清洲城 기요스조[*])는 아이치현 기요스시에 있었던 성이다. 한자가 다른 기요스 성(清須城)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기요스는 옛 오와리국 중심에 위치하였고, 한때 오와리국의 슈고가 기거해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고, 교토와 가마쿠라를 있는 도로와 이세 가도 등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405년 오와리국, 도토미국, 에치젠국의 슈고 시바 요시시게에 의해 당시 슈고의 거처였던 오리즈 성의 별성으로 축성한 것이 기요스 성의 출발점이다. 1476년 오와리 슈고 대리직을 역임한 오다 가문의 내분이 일어나 오리즈 성이 소실되자, 1478년 슈고의 거처가 기요스 성으로 이전되었다. 잠시동안 오다 단조추 가문의 오다 노부히데가 기요스 부교로서 기거한 것 이외에는 오다 야마토노카미 가문(기요스 오다 가문)의 거성으로 오와리 하4군을 다스리는 슈고 대리직의 오다 가문의 성으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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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다하라성 (아이치현) |
다하라성(일본어: 田原城 타하라조[*])은 일본 아이치현 다하라시에 위치해 있는 센고쿠 시대에 건축되어 에도 시대까지 사용된 성이다. 에도 시대 다하라번 1만 2천석을 관할하는 번청이었다. 1480년 경 도다 무네미쓰에 의해 지어져 도다 씨의 미카와 만 지배의 근거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인접한 센고쿠 다이묘들의 팽창에 따라 처음에는 마쓰다이라씨, 이후에는 이마가와 씨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1547년 도다 야스미쓰가 성을 다스릴 무렵, 의붓외손자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를 스루가국의 이마가와 씨에게까지 인질로써 호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나, 이마가와 씨를 배신하고 다케치요를 이마가와 씨의 적인 오다 노부히데에게로 빼돌려, 후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분노를 사 다하라 성은 이마가와 씨의 공격을 받았으며, 야스미쓰도 전사하였다. 그 후 다하라 성은 이마가와 씨가 점령하였으나,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이마가와 씨로부터 자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점령하여 마쓰다이라 씨의 후다이 혼다 히로타카가 성주가 되어, 요시다 성 (도요하시시)의 사카이 다다쓰구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었다. 1590년에는 이에야스가 관동으로 전봉됨에 따라 요시다 성주가 된 이케다 데루마사가 소유하게 되어, 다하라 성에는 데루마사의 가신인 이기 다다쓰구가 성주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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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데라베성 |
데라베성(일본어: 寺部城)은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던 성이었다. 15세기 후반에 스즈키 시게토키가 건설하였으며, 그 뒤로 스즈키 씨가 지배해왔다. 그 후로 스즈키 씨와 마쓰다이라 씨 사이의 공방전이 자주 벌어졌다. 1566년 오다 씨의 가신이었던 사쿠마 노부모리가 점령했다. 1618년에는 오와리 도쿠가와 씨의 가로인 와타나베 모리쓰나가 1만 2천석의 고쿠다카와 함께 데라베에 입봉하여 성주가 되었다. 모리쓰나는 데라베 성터에 진야를 건설하였고, 이는 메이지 시대 폐번치현 등이 진행될 때까지 대대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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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나고야성 |
나고야성(일본어: 名古屋城, なごやじょう)은 오와리국 아이치 군 나고야에 있었던 성이다. 오와리 도쿠가와가 17대의 거성으로 긴코조(金鯱城), 오사카성과 함께 긴죠(金城,금성)로도 불린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기타구의 메이조 공원에 있다. 이세 민요에도《이세는 나루를 품고, 나루는 이세를 품고, 오와리 나고야는 성을 품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사카성, 구마모토성과 더불어 일본 3명성이다. 천수에 놓인 긴샤치는 성뿐만 아니라 나고야의 상징이다.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의 나고야 성(那古野城)은 지금의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의 나고야 성 니노마루에 위치한다. 옛 나고야 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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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니렌기성 |
니렌기성(二連木城)은 아사쿠라 강(朝倉川) 남안의 미카와국 아쓰미 군(渥美郡)의 북단에 있는 센고쿠 시대의 성이다. 현재 아이치현 도요하시시 니렌기 정에 있다. 느릅나무로부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아울러, 일본어로 느릅나무는 유(楡)자로 표기하며 니레にれ라고 읽는다. 한자 다른 니렌기 성(仁連木城)으로도 표기한 경우도 있다. 현재 성터는 오구치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오구치란 명칭은 초대 도요하시 시장이며 일본의 중의원 의원을 지낸 오구치 기로쿠(大口喜六)의 성(姓)에서 기인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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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노다성 |
노다성(일본어: 野田城)은 아이치현 신시로시에 있는 연곽식 평산성이다. 이명으로 네고야 성(根古屋城)이 있으며, 가이의 센고쿠 다이묘 다케다 신겐의 최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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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요시다성 (도요하시시) |
요시다성(일본어: 吉田城)은 아이치현 도요하시시에 있는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미카와 요시다 번의 번청이 있었고, 메이지 유신 후, 도요하시성(豊橋城)으로도 불리었다. 1505년 우시쿠보 성주 마키노 고하쿠가 스루가국 슈고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명을 받고 이곳에 성을 축성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이때 성의 명칭은 이마하시 성이라고 한지만, 명확치 않다. 축성 목적은 미카와 서부에서 세를 넓히는 안쇼 성주 마쓰다이라 나가치카를 견제하기 위해, 혹은 마쓰다이라 가문과 우호관계인 다하라 성주 도다 무네미쓰를 경계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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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아즈치성 |
아즈치성(일본어: 安土城 아즈치조[*])은 오다 노부나가가 비와호 동쪽의 아즈치산 (현재 시가현 오미하치만시)에 건조시킨 성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되어 있으며, 천주의 높이가 약 32m이다. 지금까지의 성에는 없는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된 호화로운 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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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사와 산성 |
사와야마 성(일본어: 佐和山城 사와야마조[*])은 시가현 히코네시에 있었던 연곽식 산성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때 실질적으로 서군을 이끈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다. 사와 산성이 축성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 호족 사호 가문이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아자이 가문의 지성으로 사용되었고, 1570년대 들어서 아자이 가문의 가신이며 성주였던 이소노 가즈마사가 오다 노부나가의 전투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1571년 음력 2월 항복하고, 대신 오다 가문의 가신 니와 나가히데가 입성해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1582년 음력 6월 혼노지의 변 후, 이루어진 기요스 회의에서 아케치 미쓰히데 토벌에 공이 있던 호리 히데마사에게 사와 산성을 주었다. 그 후, 호리 가문이 전봉되자, 호리오 요시하루가 입성하여 이 지역을 다스렸다. 1590년 혹은 이전 또는 이후에 고부교(五奉行) 중 한 명이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입성해 대규모로 성을 보수한다. 산 정상에는 5층 또는 3층 천수를 세워 자신의 위신을 과시해, “미쓰나리에게는 과분한 것이 두개 있다. 시마의 사콘과 사와 산의 성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단, 부교(奉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미쓰나리는 후시미성에 머무는 기간이 많았고, 실제 성의 관리는 그의 아버지 이시다 마사쓰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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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나가하마성 |
나가하마성(일본어: 長浜城 나가하마조[*])은 시가현 나가하마시 고엔 정에 있었던 평성으로, 본래의 이름은 이마하마성(今浜城)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다. 시바 료타로의《공명의 갈림길》의 주인공 지요의 남편 야마우치 가즈토요의 거성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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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히코네성 |
히코네성(일본어: 彦根城 히코네조[*])은 시가현 히코네시 긴카메 정에 있는 연곽식 평산성이다. 국보로 지정된 4개 성 중 하나이다. 다른 이름은 곤키 성(金亀城)이고, 시가 현에서는 유일하게 성곽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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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요코야마성 (시가현) |
요코야마 산성(일본어: 横山城 요코야마조[*])은 시가현 나가하마시에 있었던 산성이다. 1570년 ~ 1573년 오다 노부나가와 아자이 나가마사가 격렬히 전투를 벌였던 거점 중 하나이다. 노부나가의 부장 기노시타 히데요시(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을 수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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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가메야마성 (교토부) |
가메야마성(일본어: 亀山城 가메야마조[*])은 교토부 가메오카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단바 국 통치의 거점으로 축성했고, 에도 시대에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근세성곽으로 성을 정비해 단바 가메야마 번의 번청으로 삼았다. 현재는 종교법인 오모토의 본부가 입지해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 명칭을 따 가메오카성(亀岡城)으로 불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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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다나베성 (교토부) |
다나베성(일본어: 田辺城 다나베조[*])은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있는 윤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 다나베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이명으로는 부가쿠 성(舞鶴城)이며 이 이명으로부터 마이즈루(舞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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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니조성 |
옛 별궁 니조성(일본어: 元離宮二条城)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 니조도오리 호리가와에 있는 에도 시대 때 지어진 성으로 윤곽식 평성(坪城)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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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후시미성 |
후시미성(일본어: 伏見城, ふしみじょう)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에 있던 성의 이름이다. 현재 그 터에 세워진 후시미 모모야마 성(伏見桃山城)은 근대의 건축물로 후시미 성과는 관계없는 성이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은거 후 거처로 삼기 위하여 우지강 연안의 낮은 구릉인 시즈키산(指月山)에 주라쿠다이의 건물을 이축하는 등의 방식으로 축성했다. 하지만 1596년 발생한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500m 떨어진 고하타 산(木幡山)에 새로 축성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1598년 사망하였고, 성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후시미 성 전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후 쇼군의 선하(宣下)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오사카 전투 이후 그 역할이 오사카성으로 옮겨가면서 중요성이 덜해졌다. 결국 후시미 성은 이에야스가 은거한 1625년에 폐성되었다. 폐성 이후 성곽 일대는 꽃밭으로 개간되었는데 그 이름을 모모야마(桃山)라고 했기 때문에 모모야마 성이 후시미 성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모모야마에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모모야마 문화 등의 말이 파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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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센토 어소 |
센토 어소(일본어: 仙洞御所 센토고쇼[*])란 퇴위한 일본 천황(상황, 법황)의 어소이다. 센토(仙洞)란 본래 신선이 사는 산골을 의미한다. 또 퇴위한 천황의 이칭(異称)으로도 사용되었다. 신선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믿어온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깊은 산에 은둔생활을 한다. 이점에서 퇴위한 천황의 거처를 센토이라고 불렀다. 또, 귀인이 사는 곳을 고쇼(御所)라고 하기 때문에 센토 고쇼(仙洞御所)라고 불리게 된다. 상황, 법황은 퇴위후, 궁궐로부터 퇴거하여 이곳 센토 고쇼로 거처를 옮겼다. 센토 고쇼는 또 인(院)이라고 불렸는데, 이 말도 상황, 법홍의 이칭으로 사용되었다. 센토 고쇼에는 가세이기관(家政機関)으로 인노초(院庁)가 설치되었고, 시라카와 천황 때에는 근위대라 할 수 있는 호쿠멘노부시(北面の武士) 후에 사이멘노부시(西面の武士)가 설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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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니조조마에역 |
니조조마에역(일본어: 二条城前駅)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에 있는 교토 시영 지하철 도자이 선의 역이다. 역 번호는 T14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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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오사카성 |
오사카성 혹은 대판성(일본어: 大坂城, 大阪城)은 셋쓰국 히가시나리군 오사카에 있었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조(金城) 혹은 긴조(錦城)로, 과거에는 오사카(大坂)가 근대에 와서 오사카(大阪)로 표기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오사카(大阪)라고 많이 표기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오자카라고 읽었지만, 현재에는 오사카로 많이 읽힌다. 도요토미 정권의 본성으로 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서 소실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에도 시대에 재건을 해 에도 막부의 서일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의 오사카조 공원(大阪城公園)이다. 구마모토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중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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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지하야성 |
지하야성(일본어: 千早城 지하야조[*])은 오사카부 미나미카와치군 지하야아카사카촌 지하야에 있었던 연곽식 산성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성이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견성이다. 193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Wikipedia 세부 사항 |
96.오사카성 공원 |
북위 34° 41′ 15″ 동경 135° 31′ 33″ / 북위 34.687378° 동경 135.525844° / 34.687378; 135.525844 오사카 성 공원(일본어: 大阪城公園)은 일본 오사카시 주오구에 있는 대형 녹지 공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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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사나다마루 |
사나다마루(일본어: 真田丸 사나다마루[*])는 게이초 19년(1614년)의 오사카 전투(겨울 전투) 중 도요토미 측인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에 의해 오사카성의 평야 입구에 구축 되었던 구루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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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요토미 히데요시(일본어: 豊臣秀吉, 덴분 6년 음력 2월 6일 (1537년 3월 17일)[2] ~ 게이초 3년 음력 8월 18일(1598년 9월 18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3영걸로 불린다. 또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도요토미(豊臣)성을 하사받기 이전에 하시바(羽柴)성을 사용했다.[5] 그 자신의 가신(家臣) 가토 기요마사의 어머니인 이토(伊藤)는 히데요시의 6촌 여동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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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도요토미 히데요리 |
도요토미/도요토미노/하시바 히데요리(일본어: 豊臣/羽柴秀頼)(1593년 8월 29일 ~ 1615년 6월 4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측실 차차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아명은 히로이마루(拾丸)이다.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비롯한 도쿠가와 세력과의 알력 끝에 1615년 오사카 전투 때 오사카성이 함락되자 생모 요도도노와 함께 자살했다. 향년 2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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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요도도노 |
요도도노(일본어: 淀殿(よどどの), 1569년(에이로쿠 12년)경 ~ 1615년(게이쵸 20년) 5월 8일)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여성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다. 요도기미(일본어: 淀君)라고도 불린다. 센고쿠 다이묘인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내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인 오이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본명은 아자이 차차(浅井茶々) 또는 아자이 기쿠코(浅井菊子)이다. 히데요시의 외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이다. 오사카 전투에서 패하면서 오사카성에서 아들 히데요리와 그 운명을 함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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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아카시성 |
아카시성(일본어: 明石城)은 효고현 아카시시에 있는 연곽제곽혼합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 아카시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기하루성/기슌성(喜春城), 긴코성(錦江城)이라는 이명도 있다. 축성에 있어서 무예가 미야모토 무사시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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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아코성 |
아코성(일본어: 赤穂城)은 일본 효고현 아코시에 있는 변형윤곽식 평성이다. 특히 주신구라(忠臣蔵: 충신장)로 잘 알려진 비운의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의 거성이었다. 국가 지정 사적 및 명승지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가리야성(加里屋城), 오타카성(大鷹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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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간조 산성 |
간조 산성(感状山城)은 현재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일본의 성이다. 아카마쓰 씨 성터(赤松氏城跡)의 일부로써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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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고즈키성 |
고즈키성(일본어: 上月城 고즈키조[*])은 효고현 사요군 사요정에 있었던 연곽식 산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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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스모토성 |
스모토성(일본어: 洲本城)은 효고현 스모토시에 있는 성이다. 에도 시대 초기에 스모토 번청을 두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성으로 알려져 있다. 미쿠마 성(三熊城)이라는 이명이 있으며 성터는 국가 사적에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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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다케다성 |
다케다성(일본어: 竹田城 다케다조[*])은 효고현 아사고시 와다야마 정 다케다 있는 연곽식 산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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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다쓰노성 |
다쓰노성(일본어: 龍野城)은 효고현 다쓰노시 다쓰노정에 있는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 다쓰노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가스미 성(霞城)이라는 이명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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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히메지성 |
히메지성(일본어: 姫路城 히메지조[*])은 효고현 히메지시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성벽이 불에 타지 않도록 백색의 회벽을 발라두어 하쿠로성(白鷺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를 시라사기성으로 잘못 읽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근세 성곽이다. 성 전체는 세계유산이며 국가 사적이다. 천수를 포함하여 여러 건물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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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미키성 |
미키성(일본어: 三木城 미키조[*])은 효고현 미키시 우에노마루 정에 있었던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가마야마 성(釜山城) 또는 벳쇼 성(別所城)으로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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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고리야마성 (나라현) |
고리야마성(일본어: 郡山城)은 나라현 야마토코리야마시에 있는 윤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고리야마 번의 번청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누부시 성(犬伏城)이란 이명이 있다. 센고쿠 시대 이전부터 소규모의 성이 있었지만, 1580년 야마토 국을 영지로 한 쓰쓰이 준케이가 쓰쓰이 성에서 이 지역으로 옮겨와 새로이 성을 축성했다.《다문원일기》에 따르면, 1583년 음력 4월 천수가 완공되었다고 적고있다. 준케이 사후, 양자 쓰쓰이 사다쓰구가 이가 우에노로 이봉되었고, 1585년 하시바 히데요시의 동생 하시바 히데나가가 야마토, 이즈미, 기이 3개국을 영지로 고리야마 성에 입성했다. 히데나가는 100만석의 다이묘에 걸맞게 성을 대폭확장하였고, 새로이 7층의 천수를 세운다. 성을 개축할때, 주변의 석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석불과 묘석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 성하 마을도 크게 발전시켰다. 이 때, 도시계획에 있어 마을을 직업별, 신분별로 구분해 조성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그들 마을 명이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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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다카토리성 |
다카토리성(일본어: 高取城 다카토리조[*])은 나라현 다카이치군 다카토리정에 있는 연곽식 산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다카토리 번의 번청이 있었으며, 일본 3대 산성 중 한 곳이다. 성터는 국가 사적에 지정되어 있다. 성은 다카토리 정에서 4km 정도 남동에 있는 높이 583m, 비고 350m의 다카토리 산 정상에 축성되어 있다. 성하 마을에서 본 성의 모습을〈동남쪽 다카토리에 눈이 온 것인가, 눈이 아니라 그건, 도사의 성〉이란 말로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도사란 다카토리의 옛 지명이다. 성의 구루와는 일렬로 연결된 연곽식 산성이며, 산성과 관계없이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성내 면적은 약 10,000m2, 주위는 약 3km이며, 외성을 합칠 경우, 총 60,000m2, 주위는 약 30km에 육박한다. 이는 일본의 산성 중 가장 넓고, 이런 까닭에 빗추 마쓰야마 성, 이와무라 성과 함께 일본 3대 산성으로 거론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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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다몬산성 |
다몬산성(일본어: 多聞山城 다몬야마조[*])은 일본 나라현 나라시 호렌 정에 있던 평산성이다. 다몬성(多聞城)이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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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갓산토다성 |
도다성(일본어: 富田城)은 시마네현 야스기시 히로세 정 도다에 있는 산성이다. 갓산 산에 축성되었기 때문에 갓산 산성(月山城), 갓산토다성(月山富田城)이란 이명이 존재한다. 성터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기슭에 거관을 조성하였고, 거관 뒤 높이 197m의 갓산 산정에 성을 쌓아 전시에 대비하였다. 산정에는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일렬로 배치하였고, 갓산 산의 능성에 여러 구루와를 두었다. 특히 혼마루와 니노마루 사이에는 호리키리가 혼마루와 니노마루 사이를 가르고 있다. 남북조, 무로마치 시대 이즈모 국 슈고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센고쿠 시대에는 주고쿠 지방을 호령한 아마고 가문(尼子氏)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아마고 가문과 오우치 가문 및 모리 가문의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번번이 격퇴한 센고쿠 시대의 견성으로 알려져 있다(갓산토다 성 전투). 이런 연유로 천공의 성(天空の城)으로도 불리며, 일본 5대 산악성 중에 한곳이기도 하다. 1600년 이후 호리오 가문이 부임하였고, 1611년 호리오 다다하루가 마쓰에성을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폐성되었다. 193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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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쓰와노성 |
쓰와노성(일본어: 津和野城, つわのじょう)은 시마네현 가노아시군 쓰와노정에 있었던 성이다. 1942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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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하마다성 |
하마다성(일본어: 浜田城)은 시마네현 하마다시 도노 정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 하마다 번의 번청이 있었다. 가메야마 성이란 이명이 있다. 1619년 하마다 시 중심의 높이 68m의 가메야마 산에 축성되었으며, 넓이 약 0.3ha의 혼마루에 높이 14m의 3층의 천수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혼마루 하단에는 니노마루, 산노마루, 데마루가 제곽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성의 북쪽에는 마쓰하라 만이, 동쪽에는 아자이 강을 끼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에 흐르는 하마다 강을 천연의 해자로 삼았다. 처음 하마다 성의 성주는 도자마 다이묘인 후루타씨(古田氏)였지만, 점차 후다이, 신판 다이묘로 교체되었다. 이는 막부에서 인접한 조슈번의 모리씨(毛利氏)를 경계하기 위한 한 의중으로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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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마쓰에성 |
마쓰에성(일본어: 松江城 마쓰에조[*])은 시마네현 마쓰에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이명으로는 지도리 성(千鳥城)이며, 국보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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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이마바리성 |
이마바리성(일본어: 今治城)은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도리 정에 있는 성이다. 해안에 지어진 성으로 천수각에서 세토 내해를 조망할 수 있다. 일본 3대 수성(水城)중 하나이다. 성은 에도 시대 이마바리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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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우와지마성 |
우와지마성(일본어: 宇和島城)은 에히메현 우와지마시 마루노우치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국가 지정 사적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쓰루지마 성(鶴島城), 마루베시 성(丸串城)이다. 에도 시대에는 우와지마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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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오즈성 |
오즈성(일본어: 大洲城 오즈조[*])은 에히메현 오즈시 오즈에 있는 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지조 산성(地蔵ヶ嶽城), 히지 성(比志城), 오쓰 성(大津城) 등으로 불리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통공법으로 천수각이 복원된 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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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마쓰야마성 (에히메현) |
마쓰야마성(일본어: 松山城 마쓰야마조[*])은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의 중심부에 있는 가쓰산 정상(표고 132m)에 있는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키성(金亀城), 가쓰야마성(勝山城)이다. 현재 전국에 12개밖에 현존하지 않는 에도시대 이전에 건축된 천수를 가지고 있는 성곽의 하나이다. 현존하는 12개 천수중에서는 히메지성과 같은 매우드문 양식으로 천수는 대천수와 소천수, 미나미스미 망루, 기타스미 망루를 와타리 망루로 연결된 연립식 성곽이다. 현존하는 천수 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히메지 성, 와카야마성과 함께 일본 3대 연립식 평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지정 사적이고, 국가 중요 문화재(건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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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유즈키성 |
유즈키성(일본어: 湯築城)은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도고 정에 있는 성이다. 현재는 현립 도고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성루와 해자가 잘 보존되어 있다. 국가 지정사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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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오노성 (후쿠오카현) |
오노성 또는 오노노키(일본어: 大野城, おおのじょう 또는 おおののき)는 일본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에 지쿠젠(筑前)의 시오지산(四王寺山)에 축성한 백제식 산성[1][2]이다. 현재 후쿠오카현(福岡県) 오노조시(大野城市) 우미정(宇美町)에 있다. 일본은 1952년 3월 31일에 이곳을 특별사적으로 지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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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구루메성 |
구루메성(일본어: 久留米城)은 지쿠고국 미이군(현재의 후쿠오카현 구루메시 사사야마 쵸)에 있었던 일본의 성이다. 현재의 성곽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후쿠오카현의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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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고쿠라성 |
고쿠라성(일본어: 小倉城)은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고쿠라키타구에 있는 제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고쿠라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고쿠라성은 13세기 중반 무라사키가와 강 하구 서안의 언덕에 축성된 것으로 근세성곽으로 재탄생한 것은 모리 가쓰노부가 성주로 부임할 무렵인 1590년대이며 호소카와 가문이 성주로 부임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혼마루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마쓰노마루, 북으로는 기타노마루를 두었으며, 그 주위를 니노마루와 산노마루가 둘러싼 제곽식 평성이다. 건물은 대천수와 소천수 각각 1기, 단층 망루 117기, 2층 망루 16기를 두었고, 성문 12곳과 총안인 사마가 3271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성의 동쪽으로 흐르는 무라사키가와 강을 천연의 해자로 삼았다. 현재 석벽의 일부와 해자가 남아 있으며, 천수, 망루, 정원과 무가저택이 재건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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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후쿠오카성 |
후쿠오카성(일본어: 福岡城 후쿠오카조[*])은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주오구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마이즈루성(舞鶴城) 혹은 세키성(石城)이다. 에도 시대 초기에 완성되었으며,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의 거성이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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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미즈키 (유적) |
미즈키(水城)는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오노조시, 가스가시에 걸쳐 있는 고대 일본의 성이다. 성터는 현재 일본의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다자이후의 서쪽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던 토루(土塁), 해자로 길이는 약 1.2km에 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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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가네이시성 |
가네이시성(일본어: 金石城)는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이즈하라 정에 있는 성으로, 북동쪽에 인접한 산바라 성과 합쳐 이즈하라 성으로도 불리고 있다. 가네이시 성은 임진왜란 때 축성된 시미즈 산성의 기슭에 위치한 평성으로 쓰시마 후추 번주 소 가문의 거성이다. 기네이시노야카타(金石屋形)로 불리는 거관이지만,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근세 성곽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석벽과 해자가 조성되었지만, 천수는 세우지 않고, 오테 문에 2층의 망루를 세워 천수 대용으로 삼았다. 현재는 다이쇼 시대 해체된 오테 문이 고 사진과 문헌을 토대로 목조로 복원되었고, 1988년 태풍으로 도파된 산바라 성의 오테 문(통칭 고라이 문)이 이축 복원되어 있다. 성터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성터에 조성된 정원이 국가 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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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가네다성 |
가네다성(金田城)은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쓰시마시(対馬市) 미쓰시마 정(美津島町) 구로세(黒瀬)의 조산(城山)에 위치한 일본의 고대 산성(古代山城, 조선식 산성. 특히 백제식 산성[1][2])이다. 성터는 현재 일본의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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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시마바라성 |
시마바라성(일본어: 島原城, しまばらじょう)은 일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시에 있는 연곽식 평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모리타케 성(森岳城)이라고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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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시미즈 산성 |
시미즈 산성(清水山城)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축조한 성으로, 이 산성의 위치는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이즈하라마치에 소재하고 있는 시미즈산(清水山, 해발 206m)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 산성은 통상적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교통편으로는 이즈하라항에서 도보로 약 20분 소요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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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히라도성 |
히라도성(일본어: 平戸城 히라도조[*])은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시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에도 시대 히라도번 마쓰라씨의 거성이었다. 다른 이름으론 가메오카성(亀岡城)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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