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메야마성 (교토부) | ||||||
가메야마성(일본어: 亀山城 가메야마조[*])은 교토부 가메오카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단바 국 통치의 거점으로 축성했고, 에도 시대에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근세성곽으로 성을 정비해 단바 가메야마 번의 번청으로 삼았다. 현재는 종교법인 오모토의 본부가 입지해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 명칭을 따 가메오카성(亀岡城)으로 불리고 있다. | ||||||
2.다나베성 (교토부) | ||||||
다나베성(일본어: 田辺城 다나베조[*])은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있는 윤곽식 평성이다. 에도 시대 다나베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이명으로는 부가쿠 성(舞鶴城)이며 이 이명으로부터 마이즈루(舞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 ||||||
3.니조성 | ||||||
옛 별궁 니조성(일본어: 元離宮二条城)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 니조도오리 호리가와에 있는 에도 시대 때 지어진 성으로 윤곽식 평성(坪城)이다. | ||||||
4.후시미성 | ||||||
후시미성(일본어: 伏見城, ふしみじょう)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에 있던 성의 이름이다. 현재 그 터에 세워진 후시미 모모야마 성(伏見桃山城)은 근대의 건축물로 후시미 성과는 관계없는 성이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은거 후 거처로 삼기 위하여 우지강 연안의 낮은 구릉인 시즈키산(指月山)에 주라쿠다이의 건물을 이축하는 등의 방식으로 축성했다. 하지만 1596년 발생한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500m 떨어진 고하타 산(木幡山)에 새로 축성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1598년 사망하였고, 성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후시미 성 전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후 쇼군의 선하(宣下)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오사카 전투 이후 그 역할이 오사카성으로 옮겨가면서 중요성이 덜해졌다. 결국 후시미 성은 이에야스가 은거한 1625년에 폐성되었다. 폐성 이후 성곽 일대는 꽃밭으로 개간되었는데 그 이름을 모모야마(桃山)라고 했기 때문에 모모야마 성이 후시미 성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모모야마에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모모야마 문화 등의 말이 파생되었다. | ||||||
5.센토 어소 | ||||||
센토 어소(일본어: 仙洞御所 센토고쇼[*])란 퇴위한 일본 천황(상황, 법황)의 어소이다. 센토(仙洞)란 본래 신선이 사는 산골을 의미한다. 또 퇴위한 천황의 이칭(異称)으로도 사용되었다. 신선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믿어온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깊은 산에 은둔생활을 한다. 이점에서 퇴위한 천황의 거처를 센토이라고 불렀다. 또, 귀인이 사는 곳을 고쇼(御所)라고 하기 때문에 센토 고쇼(仙洞御所)라고 불리게 된다. 상황, 법황은 퇴위후, 궁궐로부터 퇴거하여 이곳 센토 고쇼로 거처를 옮겼다. 센토 고쇼는 또 인(院)이라고 불렸는데, 이 말도 상황, 법홍의 이칭으로 사용되었다. 센토 고쇼에는 가세이기관(家政機関)으로 인노초(院庁)가 설치되었고, 시라카와 천황 때에는 근위대라 할 수 있는 호쿠멘노부시(北面の武士) 후에 사이멘노부시(西面の武士)가 설치되었다. | ||||||
6.니조조마에역 | ||||||
니조조마에역(일본어: 二条城前駅)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에 있는 교토 시영 지하철 도자이 선의 역이다. 역 번호는 T14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