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사카성 | ||||||
오사카성 혹은 대판성(일본어: 大坂城, 大阪城)은 셋쓰국 히가시나리군 오사카에 있었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조(金城) 혹은 긴조(錦城)로, 과거에는 오사카(大坂)가 근대에 와서 오사카(大阪)로 표기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오사카(大阪)라고 많이 표기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오자카라고 읽었지만, 현재에는 오사카로 많이 읽힌다. 도요토미 정권의 본성으로 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서 소실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에도 시대에 재건을 해 에도 막부의 서일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의 오사카조 공원(大阪城公園)이다. 구마모토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중 하나이다. | ||||||
2.지하야성 | ||||||
지하야성(일본어: 千早城 지하야조[*])은 오사카부 미나미카와치군 지하야아카사카촌 지하야에 있었던 연곽식 산성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성이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견성이다. 193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
3.오사카성 공원 | ||||||
북위 34° 41′ 15″ 동경 135° 31′ 33″ / 북위 34.687378° 동경 135.525844° / 34.687378; 135.525844 오사카 성 공원(일본어: 大阪城公園)은 일본 오사카시 주오구에 있는 대형 녹지 공원이다. | ||||||
4.사나다마루 | ||||||
사나다마루(일본어: 真田丸 사나다마루[*])는 게이초 19년(1614년)의 오사카 전투(겨울 전투) 중 도요토미 측인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에 의해 오사카성의 평야 입구에 구축 되었던 구루와이다. | ||||||
5.도요토미 히데요시 | ||||||
도요토미 히데요시(일본어: 豊臣秀吉, 덴분 6년 음력 2월 6일 (1537년 3월 17일)[2] ~ 게이초 3년 음력 8월 18일(1598년 9월 18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3영걸로 불린다. 또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도요토미(豊臣)성을 하사받기 이전에 하시바(羽柴)성을 사용했다.[5] 그 자신의 가신(家臣) 가토 기요마사의 어머니인 이토(伊藤)는 히데요시의 6촌 여동생이다. | ||||||
6.도요토미 히데요리 | ||||||
도요토미/도요토미노/하시바 히데요리(일본어: 豊臣/羽柴秀頼)(1593년 8월 29일 ~ 1615년 6월 4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측실 차차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아명은 히로이마루(拾丸)이다.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비롯한 도쿠가와 세력과의 알력 끝에 1615년 오사카 전투 때 오사카성이 함락되자 생모 요도도노와 함께 자살했다. 향년 23세. | ||||||
7.요도도노 | ||||||
요도도노(일본어: 淀殿(よどどの), 1569년(에이로쿠 12년)경 ~ 1615년(게이쵸 20년) 5월 8일)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여성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다. 요도기미(일본어: 淀君)라고도 불린다. 센고쿠 다이묘인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내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인 오이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본명은 아자이 차차(浅井茶々) 또는 아자이 기쿠코(浅井菊子)이다. 히데요시의 외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이다. 오사카 전투에서 패하면서 오사카성에서 아들 히데요리와 그 운명을 함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