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안조성 | ||||||
안조성(일본어: 安祥城, あんじょうじょう)은 일본 미카와국 헤키카이 군(지금의 아이치현 안조시)에 있었던 성이었다. 설상대지의 선단에 세워져 있었으며, 주위는 논과 숲으로 에워싸여 있고 그 안쪽에 토루와 해자가 파여져 있었으며, 천수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 축성되어 오다씨, 이마가와씨, 마쓰다이라씨 간의 격렬한 전투가 이루어졌다. 숲에 둘러싸여 있었던 데에서 모리성(일본어: 森城 모리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비석, 무덤, 기리기시, 해자, 일부 성곽 등만이 남아있다. 혼마루 자리에는 다이조 사, 니노마루 자리에는 하치반 사, 산노마루 자리에는 다이조 사의 뒷마당이 있다. | ||||||
2.이누야마성 | ||||||
이누야마성(일본어: 犬山城)는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에 있는 소규모 성곽이다. 1935년 천수각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 ||||||
3.이와쿠라성 (아이치현) | ||||||
이와쿠라성(일본어: 岩倉城)은 아이치현 이와쿠라시 시모혼 정에 있었던 평성이다. 현재 성터는 이와쿠라 시 지정 사적에 등재되어 있다. 고문서에 따르면, 이와쿠라 성은 남북 약 170m, 동서 약 90m의 2중의 해자로 둘러쳐진 평성으로 망루와 저택이 있었다고 한다. 축성주에 관해서는 1479년 오다 도시히로가 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오다 노부야스가 하였다는 설도 있다. 오다 도시히로는 오와리 국 슈고 시바 요시토시의 가신으로 오와리 국 슈고다이의 직책으로 오와리 북부의 4개군을 다스렸다. 당시 오와리는 오다 도시히로의 이세노카미 가문(이와쿠라 오다 가문)과 오다 도시사다의 야마토노카미 가문(기요스 오다 가문)이 양분되어 패권을 다툰 후, 오와리 국 중 남부 오다 야마토노카미 가문이, 북부는 오다 이세노카미 가문이 둘로 나누어 다스리게 된다. | ||||||
4.잘못된 제목 | ||||||
5.가니에성 | ||||||
가니에성(일본어: 蟹江城 가니에조[*])은 아이치현 아마군 가니에정에 있었던 성이다. 가니에 전투로 널리 알려진 성이다. | ||||||
6.가리야성 | ||||||
가리야성(일본어: 刈谷城 카리야조[*])은 일본 미카와국 헤키카이 군 가리야 (지금의 아이치현 가리야시)에 있었던 성이었다. 축성 당시의 한자 표기는 刈屋城이었으나, 1950년 가리야 정이 시로 승격한 이후에는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15세기의 가리야 고성과, 센고쿠 시대 중에 세워진 가리야 성 두 개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 ||||||
7.기요스성 | ||||||
기요스성(일본어: 清洲城 기요스조[*])는 아이치현 기요스시에 있었던 성이다. 한자가 다른 기요스 성(清須城)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기요스는 옛 오와리국 중심에 위치하였고, 한때 오와리국의 슈고가 기거해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고, 교토와 가마쿠라를 있는 도로와 이세 가도 등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405년 오와리국, 도토미국, 에치젠국의 슈고 시바 요시시게에 의해 당시 슈고의 거처였던 오리즈 성의 별성으로 축성한 것이 기요스 성의 출발점이다. 1476년 오와리 슈고 대리직을 역임한 오다 가문의 내분이 일어나 오리즈 성이 소실되자, 1478년 슈고의 거처가 기요스 성으로 이전되었다. 잠시동안 오다 단조추 가문의 오다 노부히데가 기요스 부교로서 기거한 것 이외에는 오다 야마토노카미 가문(기요스 오다 가문)의 거성으로 오와리 하4군을 다스리는 슈고 대리직의 오다 가문의 성으로 사용되었다. | ||||||
8.다하라성 (아이치현) | ||||||
다하라성(일본어: 田原城 타하라조[*])은 일본 아이치현 다하라시에 위치해 있는 센고쿠 시대에 건축되어 에도 시대까지 사용된 성이다. 에도 시대 다하라번 1만 2천석을 관할하는 번청이었다. 1480년 경 도다 무네미쓰에 의해 지어져 도다 씨의 미카와 만 지배의 근거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인접한 센고쿠 다이묘들의 팽창에 따라 처음에는 마쓰다이라씨, 이후에는 이마가와 씨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1547년 도다 야스미쓰가 성을 다스릴 무렵, 의붓외손자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를 스루가국의 이마가와 씨에게까지 인질로써 호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나, 이마가와 씨를 배신하고 다케치요를 이마가와 씨의 적인 오다 노부히데에게로 빼돌려, 후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분노를 사 다하라 성은 이마가와 씨의 공격을 받았으며, 야스미쓰도 전사하였다. 그 후 다하라 성은 이마가와 씨가 점령하였으나,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이마가와 씨로부터 자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점령하여 마쓰다이라 씨의 후다이 혼다 히로타카가 성주가 되어, 요시다 성 (도요하시시)의 사카이 다다쓰구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었다. 1590년에는 이에야스가 관동으로 전봉됨에 따라 요시다 성주가 된 이케다 데루마사가 소유하게 되어, 다하라 성에는 데루마사의 가신인 이기 다다쓰구가 성주가 되었다. | ||||||
9.데라베성 | ||||||
데라베성(일본어: 寺部城)은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던 성이었다. 15세기 후반에 스즈키 시게토키가 건설하였으며, 그 뒤로 스즈키 씨가 지배해왔다. 그 후로 스즈키 씨와 마쓰다이라 씨 사이의 공방전이 자주 벌어졌다. 1566년 오다 씨의 가신이었던 사쿠마 노부모리가 점령했다. 1618년에는 오와리 도쿠가와 씨의 가로인 와타나베 모리쓰나가 1만 2천석의 고쿠다카와 함께 데라베에 입봉하여 성주가 되었다. 모리쓰나는 데라베 성터에 진야를 건설하였고, 이는 메이지 시대 폐번치현 등이 진행될 때까지 대대로 이어졌다. | ||||||
10.나고야성 | ||||||
나고야성(일본어: 名古屋城, なごやじょう)은 오와리국 아이치 군 나고야에 있었던 성이다. 오와리 도쿠가와가 17대의 거성으로 긴코조(金鯱城), 오사카성과 함께 긴죠(金城,금성)로도 불린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기타구의 메이조 공원에 있다. 이세 민요에도《이세는 나루를 품고, 나루는 이세를 품고, 오와리 나고야는 성을 품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사카성, 구마모토성과 더불어 일본 3명성이다. 천수에 놓인 긴샤치는 성뿐만 아니라 나고야의 상징이다.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의 나고야 성(那古野城)은 지금의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의 나고야 성 니노마루에 위치한다. 옛 나고야 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
11.니렌기성 | ||||||
니렌기성(二連木城)은 아사쿠라 강(朝倉川) 남안의 미카와국 아쓰미 군(渥美郡)의 북단에 있는 센고쿠 시대의 성이다. 현재 아이치현 도요하시시 니렌기 정에 있다. 느릅나무로부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아울러, 일본어로 느릅나무는 유(楡)자로 표기하며 니레にれ라고 읽는다. 한자 다른 니렌기 성(仁連木城)으로도 표기한 경우도 있다. 현재 성터는 오구치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오구치란 명칭은 초대 도요하시 시장이며 일본의 중의원 의원을 지낸 오구치 기로쿠(大口喜六)의 성(姓)에서 기인한 것이다. | ||||||
12.노다성 | ||||||
노다성(일본어: 野田城)은 아이치현 신시로시에 있는 연곽식 평산성이다. 이명으로 네고야 성(根古屋城)이 있으며, 가이의 센고쿠 다이묘 다케다 신겐의 최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 ||||||
13.요시다성 (도요하시시) | ||||||
요시다성(일본어: 吉田城)은 아이치현 도요하시시에 있는 평성이다. 에도 시대에는 미카와 요시다 번의 번청이 있었고, 메이지 유신 후, 도요하시성(豊橋城)으로도 불리었다. 1505년 우시쿠보 성주 마키노 고하쿠가 스루가국 슈고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명을 받고 이곳에 성을 축성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이때 성의 명칭은 이마하시 성이라고 한지만, 명확치 않다. 축성 목적은 미카와 서부에서 세를 넓히는 안쇼 성주 마쓰다이라 나가치카를 견제하기 위해, 혹은 마쓰다이라 가문과 우호관계인 다하라 성주 도다 무네미쓰를 경계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